[ ] 의료사고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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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박혜자
- 조회수 : 55회
- 작성일 : 12-05-18 17: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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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다 하소연 할 곳도 없이 답답한 마음을 적어봅니다.
약간 신장이 안좋은거 말고는 건강하셨던 아버님께서 작년 겨울에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쁘다고 하여 대학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진찰 결과 심장판막에 이상이 생겨 피가 역류하고 있다고 하여 수술을 권하였습니다.
그래서 11년 12월 22일 승모판막치환술을 받으셨습니다. 수술실에 9시에 들어가셔서 오후 3~4시 경에 나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술 결과가 좋다고 하여 수술 후 2012년 1월 20일 퇴원을 하시고 통원치료를 1주일에 한 번씩 받다가 2주에 한 번씩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한 달여가 지났을 무렴 어느날 갑자기 고열이 나서 해열제를 먹어 진정시켰습니다. 그게 시초였나 봅니다. 그 후 하루에도 몇번씩 오한과 고열로 시달렸습니다. 결국 3월19일 다시 대학병원 응급센터로 실려갔습니다. MRI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검사한 결과 심내막염이라는 판명을 받았습니다. 판막수술한 곳에 세균이 번식했다는 것입니다. 우선 약물치료에 들어갔습니다. 허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세균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몇 일 약물치료 후 아무런 차도가 없자 승모판만재치환수술을 해야한다고 하더군요. 저희야 그 세균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디서 옮겨 왔는지 알 수도 알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냥 의사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일반적인 세균이니까 보통 사람들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데 아버지는 면역력이 약해지셔서 스스로 이겨낼 수 없어 재수술을 해야 된다고 하니까 희망이 그것 밖에 없어 2차 수술을 선택하였습니다. 아버지께 1차 수술도 힘들게 하셨는데 한 번 더 수술 하자는 말을 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방법이 없으니까 아버지께 한 번만 더 고생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신이 힘든 것보다 엄마, 자식들이 고생할까봐 그게 걱정이셨던 아버지께서는 눈물을 훔치시면서 저희들 뜻에 따라 주셨습니다.
2012년 4월4일로 수술 날짜가 잡혔습니다. 처음 수술 때보다 1~2시간 더 걸린다고 했습니다. 9시에 수술장으로 들어가는 아버지께 파이팅을 외치고 나왔습니다. 가족, 친지들 모두 대기실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오후 3시, 4시가 되어도 아무런 통보가 없었습니다. 모두 초초해하며 좀 더 지연이 되나보다 기다렸습니다. 5시경 한 의사가 나오더니 1~2시간 더 지연될꺼라 하더군요. 일단 그런 얘기를 들었으니 조금 안심을 하고 기다렸죠. 7시, 8시 또 감감 무소식이더군요. 9시~10시 사이에 담당 교수가 나오더군요. 모두 의사가 어떤 말을 하나 귀를 기울이고 있었죠. 다행히 1시간쯤 후에 중환자실로 옮긴다고 하더군요. 왜 이렇게 수술이 오래 걸렸냐고 묻자 교수가 대답하였습니다. 기존에 있던 판막을 떼어내고 옆에 붙어 있던 세균들도 모두 제거 후 새로운 판막으로 치환하고나서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판막이 잘 붙질 않아 다시 한 번 수술을 하느라 오래 걸렸다는 겁니다. 저희야 이 때는 몰랐죠. 수술장에서 수술이 잘 못되어 다시 수술하느라 지연된 시간이 어떻한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밤 11시가 넘어 14~15시간의 긴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물론 바로 의식을 차리지는 못했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자 눈은 뜨셨으나 얼굴과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신경과에서 항경련제 약이 투여되기 시작했습니다. 몇 일 후 안면에 경련은 사라졌으나 다리쪽은 계속 경련이 났습니다. 인공호흡기 때문에 말씀은 하질 못하시나 의식은 있어 사람들을 알아보고 계속 뭔가를 적으려고 했습니다. 펜을 손에 쥐어주자 뭔가를 쓸려고 노력했습니다. 기력이 떨어져 손가락에도 펜을 잡을 힘이 없어 힘겹게 힘겹게 휘갈겨쓴 글씨는 ‘엉터리’ 였습니다. 그리고 빨리 퇴원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가족들 모두 수술 잘 되었으니 조금만 더 참으면 입원실로 올라갈거라 믿음을 주면서 저희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중환자실로 옮겨와서 힘겹게 눈을 뜨시지만 의식도 있는 것 같고 열이 오르고 내리는 것 말고는 이상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4월14일까지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허나 그 후 숨쉬는게 힘들어보이고 잦았던 고열이 계속해서 나기 시작했습니다. 폐에 물이 차 있고 약간의 폐렴이 온 것 같다고 하더군요. 수술이 잘 되었는지 어떤지는 모르나 흉보외과에서 감염내과로 전과 되었습니다. 폐렴에 대한 항생제와 폐에 차 있는 물을 빼기 위해 폐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약간의 심부전증이 있어 투석도 가끔 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계속 지켜만 봤습니다. 폐렴이 지속되다 보니 폐혈증까지 왔습니다. 하루 하루 지날수록 늘어만 가는 주사액과 고통뿐이였습니다. 담당 의사에게 상태가 어떻냐고 물어보면 폐렴이 잘 잡히질 않는다는 답변뿐이였습니다. 점점 상태가 악화되어 가고 있으나 담당 의사는 최대로 항생제를 쓰고 있으며 기다려 보자는 말 뿐이였습니다. 기관 삽입으로 했던 인공호흡도 2주가 넘어 4월23일 기관 절개술 후 목으로 삽입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러다 어떻게 되는거 아니냐고 할 때마가 저는 어머니한테 큰 소릴 질렀습니다. 의사가 기다려 보자고했지 가망 없다고 하지는 않았냐면서 어머니를 다그쳤습니다. 그런 말 할꺼면 면회 오지도 말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습니다. 믿었습니다. 믿고 싶었습니다. 의사들이 하는 말, 수술, 처방 모두 믿고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의식은 불분명해지고 눈에 초점도 없어지고 소변량에 비해 들어가는 주사약이 너무 많아 붓기는 빠지질 않고 상태는 악화만 되어 갔습니다.
그런던 5월 1일 인가 2일 경 어김없이 면회를 갔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 상태가 왜 어제 보다 더 안좋냐고 물어보니까 체온, 혈압, 산소량 등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답변이었습니다.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어머니께서 우시면서 한 말씀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얼마 못 가실 것 같다는 말에 저는 또 벌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위로는 못해드리고 소리만 지르는 제가 너무 싫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 듣기가 너무 싫어 저도 모르게 어머니께 못되게 굴었습니다.
또 하루가 지나고 5월3일 아침 면회를 갔습니다. 여전이 의식불명에 고열, 경련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붓기가 어제 보다 더 심해졌습니다. 면회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와 일을 하던 중 오후 4시 30분경 병원에서 전화 한 통화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니까 보호자들 병원으로 빨리 오라는 전화였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어머니, 형에게 전화를 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중환자실로 들어갔습니다. 아침 면회 까지도 아무말 없었는데 무슨 일이냐고 묻자 혈압이 갑자기 떨어져 승압제를 최대로 쓰고 있으나 오늘이 고비라고 아주 쉽고 간단하게 답변을 해왔습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믿고 또 믿었는데 돌아오는건 어머니의 예감이였으니...... 사경을 헤메고 있으니 상태는 아침에 비할 수 없었습니다. 온 몸이 퉁퉁 부어 있었으며 소변이 나오질 않아 들어가는 주사액은 눈으로 나오려하고 숨 쉬는 것은 기계에 의존에 한 숨 한 숨 쉬고 계셨습니다. 가족, 친지분들 모두 오시고 의사의 오늘 넘기기 힘들다는 말에 화도 내고 이 지경까지 도대체 뭘 했냐고 따져도 봤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말과 오늘이 고비고 버텨내시면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울었습니다. 제발 제발 기적처럼 일어나시라고 아버지 이렇게 떠나면 엄마 어떻게 할꺼냐고 엄마 누가 책임질꺼냐고 아버지 없는 세상에 엄마 혼자 내버려두면 떠나는 사람이야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누굴 의지하고 살아야 되냐고 목 놓아 소리쳤습니다. 그 목소리가 아버지께 들렸는지 오후 7~8시경 혈압이 90~100 사이로 돌아오고 계속 그 혈압을 유지하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기적이 일어난 것만 같았습니다. 가족 모두 긴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껀지 물어볼려고 했으나 담담 교수, 의사는 모두 퇴근하고 당직 의사만 남아있었습니다. 당직 의사에서 물어보자 내일 담당 의사와 상의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가망이 없다고 봐서 그런지 이렇다할 처방도 내리지 않고 퇴근한 것 같았습니다. 간호사는 오늘은 괜찮을꺼 같다고 귀가하라고 했습니다. 친지분들을 모두 보내고 어머니, 형, 저만 대기실에서 밤을 지세웠습니다. 갑자기 중환자실에서 호출이 있을지도 몰라 뜬 눈으로 중환자실 문만 바라보며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밤이 왜 이렇게 긴지 시간이 야속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으니 의사에게 무슨 다른 방도가 있겠지라는 희망을 가지고 동트는 새벽을 맞이하였습니다.
5월4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담당 교수와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회의 끝나고 오신다고 잠깐 기다리라는 답변이 왔습니다. 기다렸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으니 다른 방도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에 기대감에 숨죽여 기다렸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들어오라는 호출이 왔습니다. 의사가 아버지 앞에 의야해하는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기적이 일어났으니 이제 어떻게 할꺼냐고? 의사는 아주 덤덤하게 승압제도 최대로 쓰고 항생제도 제일 강한 것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기다려 보자’, ‘지켜보자 보자’라는 지금까지 해왔던 같은 말 뿐이였습니다.
이번만 잘 버텨 기적이 일어나면 다른 방법을 강구하겠지라는 믿음을 져버리고 의사들은 한결 같이 같은 말만 되풀이 하였습니다. 의사에게 기적이 일어났으니 어떻게 좀 해보라고 소릴 질러도 애원을 해봐도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합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침만 오면 뭔가가 이뤄지겠지라는 한 가닥의 희망은 말 한마디로 무참히 꺽여졌습니다. 의식도 아무 반응도 없이 고통에 힘겨워 하는 아버지의 퉁퉁 부어 풍선처럼 부풀어진 얼굴을 쓰담으며 목메인 목소리로 아버질 외치며 죄송하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기다림의 끝이 이렇게 영원히 기다리게 될 줄이야.....
결국 5월6일 아버지께서는 폐렴에 의한 다발성 장기 부전이라는 원인을 가지고 수술 후 한 마디 말씀도 못하시고 몸은 터질듯이 부풀어 올라있고 얼굴은 우리가 고통스러워 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생전의 아버지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으로 마지막 숨을 쉬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는 이렇게 갈꺼면서 편히 가지 왜 이렇게 고생했냐면서 대성통곡을 하시고 가족들은 모두 오열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저 먼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일주일 후 병원비 정산해야 한다면서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병원비가 1차 수술했을 때보다 훨씬 많이 나와서 전에 냈던 병원비와 비교해보니 마취료, 치료대가 1차 수술때보다 많이 청구되어 있었습니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2차 수술시 한 번의 실패로 재수술을 들어간건데 재수술 들어가는 비용을 왜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지 의아스러웠고 그 때는 생각지 못했는데 수술 시간이 2배로 길어지면서 환자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까지 이르게 한 것이 의료사고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집니다. 또한 1차 수술 후 심내막염이 온 것이 일반 세균이 아닌 병원성 세균으로 인한 감염 일 수도 있다고 여겨지며 사망의 원인이라 판명된 폐렴도 병원쪽 대처가 늦었고 혹시 폐렴균 말고 또 다른 균의 감염이 있질 않았나라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전문지식도 없는 개인이 대학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은 패소할게 뻔하므로 소송비만 날리게 될테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병원에게 당하기는 더더욱 싫습니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어 구구절절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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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님의 댓글
담당자 작성일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슬프신 가운데 재수술에 대한 비용까지 지불해야한다고 하니 더욱더 속상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문의주신 내용에 대해서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http://www.k-medi.or.kr)(☎ 02 6210 0114)을 통해 자문 및 조정요청해보시기 바랍니다. 모쪼록 건강하고 편안한 오후시간 보내세요.
